기사 메일전송
<向人尋書 : 사람에게서 서예 찾기 · 5> 서예가의 문제의식과 현실감각
  • 편집부
  • 등록 2025-02-27 15:19:22
  • 수정 2025-02-27 15:49:43
기사수정
  • - 한국서예 대중성 확장을 위한 제언
  • 인재 손인식 서예가


서예가의 문제의식과 현실감각


- 한국서예 대중성 확장을 위한 제언


인재 손인식  (서예가)


※ 본고는 (사)한국서예협회가 『2024 한국서예』 발간을 앞두고 필자에게 의뢰한 원고입니다. 마땅히 ‘한국서단을 향한 제언’이므로 전제하며, 전제를 위해 몇 곳 부분 수정이 있었음을 밝힙니다. (필자 주)


Ⅰ.


2년 전 한국에 갔을 때다. 미리 약속한 대로 메타버스 개발자와 만났다. 메타버스 세계 안에서 서예창작을 실험하고 즐길 프로그램 개발,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개발자의 질문, “소비자가 있을까요?” 개발비가 많이 든다는 의미였다. 답이 궁했다. 수익 영역까지 살폈어야 하는 건가? 미련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십수 년 전 서예 포털사이트 (주)서예로 운영 실패를 떠올렸다. 메타버스 운용 역시 때가 아니었다.

때, 알맞은 때란 언제일까? 기다려야 옳을까? 찾는 것이 좋을까? 필자는 때란 찾아서 만든다는 것에 한 표다. 더구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면, 또 목표가 분명하다면 때가 따로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서단의 작가들(본고에서 서단이나 작가라 함은 서예, 문인화, 전각, 퓨전 서예와 그 작가 등을 모두 포함함)이 지금 바로 함께 때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재론이 필요 없는 서단 융성, 자유로운 창작 환경을 향해 하나가 되는 일 아닐까? 함께 하면 방법이 찾아지고 실천하면 목적에 다가간다. 모르거나 어려운 것은 밀쳐두자. 지금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다소 난해한 주제인 본고 요청(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에 응한 것이나 필자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정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작가들과 서단, 서예 대중성의 주체


서단의 작가들이 바라는 서예의 대중성은 어떤 형태일까? 대중가요가 누리는 그런 대중성이 아닐 게다. 필기도구가 문방사우일 때도 가요계와 같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필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서예 대중성이란 우선 작품의 수준이 높아지고 넓어지는 것이다. 물론 작품 수준은 작가 각자가 책임질 영역이다. 최대한 멋지고 아름답게 그리고 개성 넘치는 창작품 펼치기를 누군들 바라지 않으랴. 이는 기업이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려는 노력과 같다. 이 준비가 곧 대중성 확장의 시작이다. 그 다음은 한 사람이라도 더 감상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때론 다가가고 때론 이끌어야 한다. 최선의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대중성 확장과 제대로 된 시장 형성을 위한 초석이니까. 좋은 작품과 작가들이 뭉친 참 대중성의 원천을 기대하며 제언을 시작한다.

자율적 시장형성을 바탕으로 한 ‘대중성 확장’, 이는 본고의 주제다. 시작이자 마지막까지 일관될 이야기 중심이다. 곧 대중성 확장의 주체가 작가와 서단이니만큼 각 협회 운영이나 공모전, 개인전이나 그룹전 모두가 진정한 대중성 확장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두루 살피기를 기대하며.


풍요로운 창작 환경을 위해


작가, 창작인이다. 뭔가 새로운 것, 세상에 없던 것을 자기로부터 창출해내는 창조 면허를 가진 이들이다. 자기가 지금 가장 잘하는 것을 즐기는 확신의 소유자들이다. 뜬금없다 할 수 있겠는데 경제학의 원론으로 존중받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으로 이해의 실마리로 삼는다. 아담 스미스가 인간 본성으로 본 이기심에 빗대 작가의 존재를 분명히 해보자. 성경 이후 최대의 명저로 꼽힌다는 『국부론』은 대중을 돕는 최선의 길은 자유시장 경제라고 밝힌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이 잘 발휘되는 사회에서 경제성장과 사회가 발전한다고 풀어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 사업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결과를 향유하면서 사회가 윤택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스미스의 주장처럼 음식점ㆍ빵집 운영의 발로는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자비심이 아니다.

작가활동, 이와 무엇이 다르랴. 창작이란 작가들이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는 수단이다. 사회적 감성, 예술의 공리성을 내세우지만, 알고 보면 창작이 곧 작가들의 삶의 수단이다. 그런데 매력 넘치는 고상한 삶 때문일까? 감수해야 할 것이 참 많다. 작가들 대다수가 넉넉한 삶이 아니다. 예술가란 자존감으로 자위하지만, 쓰고 싶은데 아껴야 하고, 누리고 싶은데 또 움츠리는 경제적 어려움이 다수 작가들의 현실이다.

작금의 시대상황 탓을 들 수 있겠다. 그런데 언제라고 작가들 대다수가 풍요를 누린 적 있었던가. 이유가 뭘까? 부를 쌓을 기회조차 먼 장르이기 때문이리라. 거기에 사회적으로 말하는 ‘시장’도 작다. 어느 작가라서 넉넉한 창작환경을 선호하지 않으랴. 경제논리나 시장논리 자체를 싫어할 작가 있으리라. 다만 이런 논리, 선비연하는 명분론이 아니길 바란다. 작가로서 그런 자존의식 필요하다. 뚜렷한 작가의식을 갖췄는데 거기에 현실의식을 장착해서 무엇이 나쁜가. 하고 싶은 창작과 체험 더 폭넓게 실험하며 결과적으로 더 좋은 작품 생산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 아닐까? 


Ⅱ.


작가와 서단, 대중성 확장을 위한 역할 


대중성 확장, 한국서단의 지상 과제지만 이루기는 쉽지 않다. 일반 작가 개개인들은 분명 한계다. 그러나 ‘자기 자리는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는 의식만 투철하다면 갖춘 바 충분하다. 이런 사명감 투철하고 능력 아우른 작가들 많아 일궈낸 성과들이 즐비하지 않은가.

각설, 대중성 확장의 핵심은 서단의 집단들이다. 조직의 힘, 조직의 매운맛을 발휘해야 한다. 조직이 무엇인가? 조직이란 여러 사람이 집합하고 결사한 곳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할 수 있고 공통의 관심과 개인의 신념 또는 양자의 이해에 기반한다. 주목할 것은 조직의 힘이다. 사회 구성체로서 개인일 때와는 매우 다른 능력을 발휘한다. 혼자일 때와 목표 자체가 달라진다. 그래서 혼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좀 더 쉽게 이룬다. 다양한 정보 수집과 분석, 결정 사항 실천 시 동기 부여가 높다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단점도 많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거나 리더가 모험적일 경우 집단의사결정도 과도한 모험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히틀러가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 한 예다. 특히 개인의 결정일 때는 번복이 쉽지만, 집단의 경우 일사부재리를 외치면 그만인 경우 많다. 미국의 베트남 참전이 지속된 것도, 크나큰 폐해를 외면한 것도, 각료들의 무능을 감추기 위한 것임이 밝혀졌지 않은가. 작금 우리나라 공과 사조직에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는 것 국민이 다 안다.

집단의 폐해를 강조한 것 불편할 수 있다. 한국 서단 속 집단들만큼은 가급적 조직의 장점만을 살려 나가자는 의미로 이해하실 줄 믿는다. 협회, 즉 조직의 존재 가치는 조직원 개개인의 역량을 모아 극대화하는 것에 있다. 작가 개인의 자율성을 적극 응원하면서 그 역량들을 단체의 힘으로 모으고 그 힘을 잘 쓰는 데 있다. 조직의 수장은 그 힘을 등에 업고 모두를 위한 길을 터야 한다. 그것이 조직이 나아갈 길이고 수장의 의무이겠다.

서예단체 대표들께 바란다


지금부터 본고의 목적인 제언에 돌입하겠다. 우선 서단의 사단법인 대표들의 역할이다. 이들은 모두 공인이다. 관리자요 경영인이다. 그러므로 협회 대표는 협회를 배경으로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 판공비를 연 1억 원 정도 쓰는 경영인. 1억? 많은가? 더 써도 된다. 다만 책임론이 따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몇 배의 수익으로 협회와 협회의 작가들을 융성하게 해야 한다. 혼자라면 당연히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전국을 망라한 조직이 있는 단체라면 가능하다.

방법론? 필자에게 방법론을 대라고 종주먹을 들이미는 것 맞다. 당연하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론은 상대가 정해진 뒤 그에 맞게 꾸며져야 하니 방법론은 차후의 문제다. 협회 대표로서 협회 행사들을 포괄하지 않을 수 없지만, 현재 행하는 공모전을 포함한 어지간한 사업들은 해당 분과나 위원회에 일임하면 좋을 것이다. 무조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협회를 등에 업고 정부의 문화정책파트너 역할을 자청해야 한다. 수시로 건의사항도 전달하고 유관기관과 소통 창구도 개설해야 한다. 기업과 종교계와 사회단체, 각종 재단을 찾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면 반드시 길이 생길 것이다. 가능할까? 분명하게 밝힌다. 가능하다. 필자 유사한 프로젝트를 이미 경험한 바 있어 확신한다. 다만 좋은 작품이나 대작 단번에 완성되는 일 없잖은가. 길을 찾아 걸음을 옮기다 보면 반드시 해볼 만한 것들이 도출될 것이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아쉬운 소리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작가들에겐 작품이란 최고의 무기가 있다. 이 무기를 활용하라. 상대방이 누구라도 협업할 수 있다. 상대방이 빛나고 이익도 될 수 있는 좋은 기획안으로 당당하게 제안하면 된다. 기관이나 기업, 단체와 개인 어떤 대상이라도 상대의 여력을 감안해야 하리라. 상대가 수용할 만큼의 이벤트여야 되리라. 회가 거듭될수록 커지고 달라질 것은 물론이다. 

이벤트를 위한 준비는 단단할수록 좋다. 우선 협회 소속 작가들이 이벤트에 관해 충분한 이해와 긍정이 필요하다. 대중문화 마케팅 공부와 관련 토론회도 자주 열어야 한다. 경영전문가, 마케팅 전문가를 초청하여 그들의 조언도 듣자. 필자는 기업인들을 만날 때마다 놀란다. 그들이 지닌 불굴의 도전정신과 현장에서 실천하는 창의력 때문이다. 다수의 기업인들은 예술인을 존중하는 겸손까지 지녔다. 각계의 전문가들과 우호적으로 소통하는 것 이벤트 성공의 지름길이리라.


공모전, 이 보물 기능 잘 살려야


공모전의 장단점을 모르는 작가 있을까? 해방 이후 80년대 중 후반부터 우후죽순 격으로 공모전이 생겨났다. 순기능 때문이다. 지금 한국 서단의 일부 조직들에게 공모전은 연례행사 중 가장 비중이 클 것이다. 여기서 공모전 장점을 몇 가지만 들춰보자. 우선 초학자들에게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게 한다. 또 다양성을 한곳에 모이게 함으로써 효율적으로 안목을 넓히게 한다. 객관적인 심사, 신인작가 발굴, 적절한 경쟁을 통한 이벤트, 그로 인한 대중의 이목 집중 등 순기능이 많고 다양하다.

여기서 잠깐, 지ㆍ필ㆍ묵ㆍ연, 문방사보를 살펴보자. 문방사보는 왜 수천 년이 지나도록 형태가 바뀌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서예술의 본질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자연합일 사상을 드러내는 데 그 이상의 재료와 도구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순기능으로만 치면 공모전도 가히 문방사보급 사용가치를 지녔다는 의미다.

그런데 공모전이 성장하는 사이 역기능이 비집어 들었다. 늘 말썽이 드러난다. 참 볼썽사나운 것은 신인들의 순수한 경쟁에 뛰어든 일부 기성 작가들의 대리전이다. 공모전 문제가 출품자들이 아니라 운영자나 심사자들에게서 돌출한다니 이 얼마나 웃픈 일인가. 아무튼 때마다 자성론이 인다. 제도 개선도 한다. 그런데 때마다 문제점이 고개를 든다. 해결책이 있다. 공모전 운영에 변화를 도입해야 한다. 협회의 연중행사 중 중요도 순위를 하위로 내려야 한다. 이는 위에 밝힌 협회 이사장 활동으로 창출될 이벤트에 따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공모전 이상의 이벤트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중성도 확보하고 작가들의 의욕도 살리는 그런 이벤트.

덧붙임 하나, 기성 작가들이 각성해야 할 것이 있다. 후학들을 소비의 주류로 여기지 말자. 후학들은 도와줄 대상이지 이익을 챙길 대상이 아니다. 잘 안내해서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시장은 넓어졌는데 한쪽에선 자원 고갈이라고 외친다. 이 책임 기성서단에 있다면 과한 판단일까? 그래서 기성 서예가들이 눈을 돌려야 한다. 예술과 사회를 위한 경제력이 있는 곳이다. 돈을 가치 있게 쓰도록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창구가 문화예술이요. 그 기회를 창출할 능력자들이 작가 아닌가. 예술의 성장터는 동서고금 고래로 부자였고 기득권 세력이었다는 것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부자나 권력자에게 아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자본의 흐름이 그렇다. 민중의 돈이 사회 기득권에게 몰렸다가 예술가들에게 풀리는 현상은 고금의 실제다. 하니 소비가 가능한 시장을 넓게 개척해야 한다. 누가 해줄 일이 아니다. 서단이 해야 하고 대표들이 나서야 한다.


프로리그, 초대작가전에 열쇠가 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초대작가전에 실망한 경우 많을 거다. 기대치가 높다는 증거다. 초대작가전은 상위레벨 작가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왜 그 이벤트의 관심도가 공모전보다 낮을까? 걸맞은 제도가 마련되지 못한 때문이리라. 이를테면 최소 3단계 정도 초대작가 레벨을 두고 운용하면 어떨까? 점차적으로 상위 레벨로 오르게 하는 장치 말이다. 이미 초대작가로서 프로인데 또 심사를 받아야 하는가 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뭔 소리인가. 어느 분야나 프로리그가 인정과 관심을 받아 성장한다. 일부러 경쟁터를 만들어서 치열한 경쟁에 돌입해야 한다. 이는 흥행의 기본이다. 작가야 평생 평가받는 대상이니 이런 경쟁 즐겨 응해도 좋으리라. 솔직히 초대작가 되고 나서 목표가 없어 방향을 잃은 작가들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까 프로리그다운 이벤트를 치르는 것은 사회적 이슈와 실력 향상 두 가지 면에서 장점을 드러낸다. 레벨 상승 때마다 수상자를 정하는 등 운용의 묘를 살린다면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경쟁은 이목을 집중하는 관심의 대상이다. 이미 레벨을 인정받은 초대작가들이 경쟁하는 서예 프로 리그, 멋진 이벤트 아닌가. 예컨대 몇몇 가요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모두 기존 가수이거나 이에 못지않은 실력자들이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30년 무명 가수가 경연을 발판으로 삼아 새롭게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레벨 상승 단계에서는 과거 예술의 전당 청년작가 이벤트처럼 현장 휘호도 반드시 곁들여야 하리라. 이때 서예학습자들이 관객 평가단으로 참여하면 좋은 공부가 되는 등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요프로그램 청중 평가단처럼 비중이 낮지만 더불어 평가에 참여하는 것이다. 프로 작가가 거꾸로 아마추어의 평가를 받는 것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 대중성 확장에 관해 생각해보라. 권위를 버릴 때 참 권위가 생기리라. 소수 마스터 작가들도 이벤트 흥행을 위해 역할이 크다. 경쟁 작가를 위한 정확하고 다양한 코칭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폭넓고 친절한 평가도 해야 한다. 때로는 학술대회 이상의 실질 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 않겠는가.

초대작가 이벤트야말로 협회 이사장과 위원회의 능력이 발휘될 부분이다. 이 이벤트 그야말로 특별기획이다. 꾸미기에 따라 얻는 것이 많으리라. 프로리그이므로 유관기관이나 관계 사회단체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한 명분도 좋다. 문화 예술의 가치를 잘 드러내는 것 작가들의 역할이다. 기관과 기업들은 마땅히 사회와 문화발전을 위한 기금이 있다. 이를 바르게 쓰이게 하는 것도 서단 작가들의 몫이다. 기금을 끌어내기에 부족함 없는 이벤트를 만들자. 종교행사나 기업의 광고 마케팅 등에 작품이란 무기로 연대하는 방안 연구가 활발해야 한다. 이벤트에 따라 주제를 정하고 작품화한다면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이는 한국서단의 중소 규모 그룹전들도 적용하면 좋으리라. 멋진 이벤트 좋은 기획은 방송 채널이나 후원을 저절로 따라오게 할 것이다.


Ⅲ.


여시구진, 자동화 시대의 효율


서두의 메타버스 이야기를 잠간 더 하겠다. 문외한도 VR을 통해 가상세계에서 서예 창작을 즐기게 해보자였다. 한 예다. 왕희지풍 45%에 추사풍 55%로 섞은 7자를 행초서 세로 작품으로 창작하겠다고 입력한다. 작품에 드러내고 싶은 느낌도 추가한다. 부드럽게 또는 웅장하게, 대소 변화나 번짐과 갈필의 대비 정도 등 세부 사항들이다. 그리고 창작하기를 누르면 단 10초 만에 완성작품이 화면에 뜬다. 다시 시도할 수도 있고 마음에 들면 낙관으로 맺을 수도 있다.

멋진 산과 호수가 펼쳐진 곳의 가상 카페, 창작실과 갤러리도 그림처럼 펼쳐진 곳, 갤러리에서는 NFT(디지털 자산 소유권)화 된 작품을 교환하고 판매할 수 있으며, 동호인들끼리 자유롭게 토론하며 즐길 수 있는 가상의 세계, 이게 개발 가능하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서예 창작의 세계는 오묘하다. 작가의 의식에 따른 창작세계를 AI가 다 빼앗지는 못한다.

‘AI가 그린 그림이 고액에 팔렸다’, ‘코딩을 통해 생성한 디자인 NFT가 고가에 낙찰되었다더라’ 이런 뉴스가 심심찮게 들린다. AI의 그림을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팔리면 다 작품일까? 인간의 호기심은 어디까지일까? 아무튼 자동화가 많은 직업군을 흡수한다. 작가들의 순수 창작 세계야 넘볼 수 없겠지만, 작가들도 자동화를 적극 활용해야 할 이유 많다. 필요한 AI 서비스를 발견하고 잘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자기능력 배가다. 사실 작품을 창작한 이후 처리할 일 얼마나 많은가. 마케팅만 해도 그렇다. 온라인을 이용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폭이 다르다. 결과가 다를 것은 자명하다.

필자는 최근 챗GPT와 자주 대화한다. 책 한 권을 놓고 하는 토론은 그야말로 놀랍다. 챗GPT 세계에 서예 이론이 얼마나 정립되어 있는지 테스트해보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예시를 주고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달라고 부탁하면 대답의 질이 점점 깊어진다는 점이다. 호기심 해소 차원이 아니다. 정보를 정리하거나 통계자료를 얻는 것으로 인해 아끼는 시간과 에너지가 놀랍다. 

자동화가 불편한 서예가들 많다는 것 안다. 자동화는 기회다. 생성 AI의 자동화 활용은 작업에 성과를 높이고 여유를 얻을 수 있다. 불과 1년여 전이다. 영상 편집 시 10분 영상의 자막을 생성하는 데 최소 7시간 정도 소모되었다. 그런데 자막 자동 편집 앱이 개발된 뒤 교정까지 약 20분으로 줄었다. 10시간이 소모될 일이 자동화 때문에 단 몇 분으로 줄고, 1백만 원이 들 일이 천 원 한 장으로 해결되는데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뭔가.

우리 생애에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나 시간은 유한하다. 자동화 이용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더 할 수 있고 나머지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작품 창작 말고는 다 자동화 하자. 더 많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대중의 입장에서 본 작가


본고의 결론을 지을 때다. 대중화 확장,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를 위한 첫 조건이 작가들과 서단 조직들의 몫이라는 것 다시 한 번 상기하자. 대중으로부터 무엇을 얻겠다는 생각은 구태다.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즉 작가로서 동시대에 기여할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는 것이 대중화요 작가의 영역을 넓히는 첩경이다.

대중의 입장에서 자신과 작품 세계를 정의해보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겸손이지 싶다. 프로로서 자기 창작에 관한 확신은 있는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자기의식 투철한 창작이 가능한가? 개인전은 몇 번이나 치렀는가? 작품집 또는 서예 관련 저서를 몇 권이나 발간했는가? 자신의 작가 활동과 작품 세계에 관해 자서를 해본 적 있는가?

서단의 작가는 모두 동업자다. 다른 작가를 들추려면 마땅히 그의 최고 작품을 먼저 떠올리자. 아무리 훌륭한 작가도 명작만을 생산할 수 없다. 창작한 것마다 대표작일 수도 없다. 작가가 생각하는 최고의 작품 다르고 비평가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다 다르다. 대중적 인기 작품은 또 다를 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면 평안해진다. 그러므로 명작이나 거작을 향한 존중은 클수록 좋으리라. 우리 시대에 우리 주변의 작가 누군가로부터 명작이나 거작이 창작된다면 이 얼마나 좋을 일인가. 이 시대의 보물인 거다. 창작은 최대한 자율이되 그 밖의 모든 것에서 서단이 합심한다면 대중성 확장은 이미 성공한 바나 다름없다 하겠다.

판공비 연 1억을 쓰는 CEO, 서예단체 대표들께는 너무 큰 숙제를 떠안기지 않았나 싶다. 협회와 한국서단을 위해 반드시 총대를 메주기 바란다. 이벤트를 함께 도모할 기관이나 기업, 또는 단체들이 만족할 우수한 작품 창작을 위한 주도적 역할도 아울러 줄 것을 믿는다. 우선 이 일을 함께 리드할 위원회나, 분과를 정하는 것이 순서이겠다. 유사한 이벤트 경험과 전문가들의 참여를 위해 문호를 개방하자. 우리 모두를 위한 멋진 일들이 속속 이뤄질 것을 믿는다.

공모전 문제는 서단이 존재하는 한 늘 이슈일 것이다. 직접적이고 자체적인 발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편으론 반드시 성동격서가 필요하다. 프로리그로서의 초대작가전 운용이다. 아울러 새롭게 펼칠 다양한 이벤트들은 기존의 공모전과 더불어 서단의 생명력을 키울 것이다.


다음은 자동화 이용이다. OpenAI의 챗GPT 무료 공개로 자동화 변화 속도가 눈부시다. 공개 1년 3개월여인데 새로운 버전이 연이었고 그 기간도 점점 짧아진다. AI 활용가치 만발이다. 작가들에게도 선택이 아닌 필수일 때 얻는 것이 참 많을 것이다. 잘만 활용한다면 능력 출중한 비서를 두는 격이다. 아울러 강조할 것이 유튜브 활용이다. 필자는 유튜브를 활용한 영상전시를 통해 의외의 성과를 거뒀었다. 예컨대 한 작품에 관해 5분 영상이면 작품 제작과정을 다 담을 수 있다. 작품 설명은 물론 작가의 창작의도까지 친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 감성 소통으로 참 좋은 매개다. 영상전시가 소장자가 생길 확률이 전시장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필자의 직접 체험이다. 감상자들은 전시장 오가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때와 장소 구분 없이 몇 번이고 다시 불 수 있다. 소장 버튼을 쉽게 누를 수 있다는 의미다. 작가들에게 유튜브는 그야말로 최선의 미디어다. 자료 보존으로도 최적이다. 이런 편리함을 누리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AI 자동화 활용은 공모전 시상식 이벤트나 학술대회도 극대화 할 수 있다. 많은 작가가 아직 종이책을 선호한다는 것 인정한다. 그런데 이 내용을 웹처리 했을 때 드러나는 효율을 생각해봤는가? 비용과 활용 폭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일부 작가가 온라인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이 종이책 유지 이유라면 설득력이 약하다. 현재 한국서단에 관한 통계나 자료 검색 결과가 너무 빈약하다. 웹 자료가 미미하다는 증거다. 웹 검색 자료가 많은 것 또한 대중성 확장의 지름길이다. 


마치려 드니 원고 요청 의도와 필자가 생각한 제언의 폭에 미치지 못한 점 많지 싶다. 더 많은 변화와 발전 방안이 활발히 논의될 계기가 될 것을 믿는다. 또 의도와 달리 혹자에게는 주장을 위한 주장으로 읽혔을 수 있다. 이런 주장들 역시 시작일 것을 믿으며 이만 졸고를 가름한다.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