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풍천 노복환 <금강경의 밝은 빛>
  • 이용진 편집국장
  • 등록 2023-05-23 11:47:46
  • 수정 2023-05-30 10:29:22
기사수정
  • 상방대전으로 쓴 금강경展
  • 2023. 5. 31 ~ 6. 6 인사동 한국미술관 3층
  • 개막식 : 2023. 5. 31(수) 오후3시
풍천 노복환 선생 개인전 <금강경의 밝은 빛>은 상방대전(上方大篆)을 씨줄로 삼고, 《금강경(金剛經)》을 날줄로 삼아 직조한 금강경展이다. 《금강경》을 중심에 두고, 사방으로 마치 ‘빛’이 퍼져나가는 형식을 취하였다.

(사)한국서예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풍천 노복환(豊川 盧福煥) 선생이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연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상방대전(上方大篆)을 씨줄로 삼고, 《금강경(金剛經)》을 날줄로 삼아 직조하였다. 여기에 재료와 기법의 변화로 다양한 감상의 맛을 제시한다. 특히 서예에서 서양화로의 확장적 표현 방식이 관심을 끈다. 전시 제목 <금강경의 밝은 빛 – 풍천 노복환 상방대전으로 쓴 금강경展>에서 알 수 있듯이 《금강경》을 중심에 두고, 이를 바탕으로 사방으로 마치 ‘빛’이 퍼져나가는 형식을 취하였다.




먼저 전시의 중심을 이루는 《금강경》 작품은 전지가 23장으로, 길이 16m에 이른다. 상방대전으로 썼다. 상방대전(上方大篆)은 인전(印篆)의 한 형태로 필획을 중첩하고, 쌓아 올려 인면(印面)을 가득 메우는 서체를 말한다. 중국 진(秦)나라 때의 서체로서 전서에 해당하며, 가로로 가는 획이 9개라서 ‘구첩전(九疊篆)’ 혹은 ‘첩전(疊篆)’이라고도 하며, 당시는 문자도용을 막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어보(御寶)와 관인(官印)에 사용한 문자로, ‘상방전’ 혹은 ‘상방대전’이라고 한다. 이 상방대전 서체로 글자당 가로 5cm, 세로 6cm의 크기로 《금강경》 오천사백 자를 썼다. 꼬박 45일이 걸렸다.


▲ 노복환, 금강반야바라밀다심경(금강경), 70×140cm×23폭(16m), (앞, 중간, 끝 부분)


상방대전 《금강경》과 함께 광개토대왕비체로 《금강경》을 또 한 번 썼다. 글자당 가로, 세로 각 2cm 크기로, 전지 두 장 반이다. 풍천 선생은 “광개토대왕비를 분석해보면 정방형이 아니라 획들의 방향이 다양해요. 지금 살펴봐도 광개토대왕비 같은 형태의 자형이 없습니다. 그 점을 살펴서 썼습니다.”라고 밝혔다. 풍천 선생은 중요한 역사적 인식, 즉 광개토대왕비 서체는 우리의 서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集安市) 태왕진(太王鎭)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능비(陵碑)인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서체는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서체이다. 강한 남성미, 예스럽고 질박한 아름다움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드러내 준다. 지금은 중국의 지린성에 있지만, 414년, 장수왕2년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질 때는 우리 고구려 땅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비석이라는 역사적 인식이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풍천 선생은 2016년과 2021년에 광개토대왕비체로 《천자문》을 썼고, 이번에는 광개토대왕비서체로 《금강경》을 썼다.


▲ 노복환, 탄생, 65×50cm(15호), 캔버스


▲ 노복환, 묻다1, 20호 캔버스, 2023


풍천 선생의 이번 전시작품들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 가운데 하나는 탈 서예적인 재료 사용이다. 한지와 고지(古紙)를 이용하고, 여기에 아크릴 물감과 유화물감을 사용했으며, 캔버스에 얹은 작품도 많다.

이러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중요한 요소를 발견하게 되는데, 재료는 물론이고, 표현 방식, 소재와 기법 등에서 서양화 작품 요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서예와 서양화의 중간지대에서 한지와 고지, 유화 물감과 아크릴 물감, 여러 가지 혼합 재료를 통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여전히 문자를 베이스로 하기도 하지만, 문자를 벗어버린 작품도 여럿 눈길을 끈다.


▲ 노복환, 반야심경, 54×22cm


물론 이번 전시가 《금강경》을 주제로 삼았고, 문자 요소도 강하게 나타난다. 가령 상방대전으로 《반야심경》을 전지 한 장에다 쓴 5점의 작품은 한지에 합판으로 틀을 짜서 배접된 작품을 붙이는 표구를 하였으며, 먹과 아크릴 청색을 혼용하여 썼다. 골판지, 한지, 두꺼운 종이에 한지로 감싸고, 자형을 맞춰 붙이고 금박을 칠하여 액자 형태로 완성한 상방대전 《나무관세음보살》도 문자를 작품의 바탕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서양화풍의 작품들을 불교화시켜서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 노복환, 불(佛), 91×65cm(30호), 캔버스


먼저 한지를 꼬아서 붙인 줄무늬 가운데에 부처를 모시고, 색을 칠한 형태의 《불(佛)》 시리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여 점에 이르는 이 작품들은 한지에 기름, 채색, 금분 재료에 수행 과정의 하나, 즉 본래 면목을 찾는 고행하는 마음을 ‘선(線)’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무관세음보살》 등 10여 점의 ‘발자국 시리즈’는 부처와 작가 자신, 나아가 모든 삶의 중첩과 승화를 표현하였다. 한지 고지에 기름, 먹과 채색으로 작품을 하고, 합판 표구를 하였으며, 수행의 과정의 하나이자 걸음의 표식으로 발자국을 그린 것이다. 탁발 수행의 걸음, 예도의 길을 걷는 작가의 걸음, 다양한 인생의 모든 형태로 나아가는 걸음 등 수없이 걷는 많은 발자국을 표현한 것, 그것이 바로 수행이라는 상징으로 드러냈다.

한지와 고지를 손으로 찢어서 캔버스에 붙인 부처의 ‘탄생’과 ‘열반’을 주제로 한 작품도 있다. 탄생은 파키스탄 라호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석부조를 참고하였으며, 열반은 영국박물관 소장의 석부조를 참고하였다. 열반은 1점, 탄생은 4점이다.


▲ 노복환, 나무관세음보살, 75×60cm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점은 주재료의 변화와 강조이다. 가령 고지(古紙)의 사용 방법을 다르게 한 점을 살펴보자. 지난번 개인전에서는 평면, 요철(凹凸), 붙이기, 찢기, 덧붙이기에도 모두 고지를 활용하였는데, 이번에도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고지의 물성(物性) 표현 방식을 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씀’에서 ‘그림’의 요소로 나아가고 있다.

풍천 노복환 선생의 이번 개인전은 서예와 서양화의 접점에서 서양화의 표현 요소를 많이 끌어들이려 하였다. 특히 앞으로는 서양화 재료 사용과 표현 방식을 더 확대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임을 명확히 제시해주고 있다.


▲ 노복환, 《반야심경》, 상방대전 서체, 140×70cm, 2022년, 한지·고지·합판


▲ 노복환, 나무관세음보살, 120×50cm


▲ 노복환, 반야심경, 140×70cm


▲ 노복환, 묻다1, 20호 캔버스, 2023


문의 : 노복환작가 010-6355-6968, (인사동 한국미술관 3층 전시실 02-739-0589)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