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겸(趙之謙)에 대하여
조지겸(1829~1884년)의 자(字)는 익보(益甫)이며, 젊었을 때의 호(號)는 위숙(撝叔), 철삼(鐵三), 냉군(冷君), 감료(憨寮), 비암(悲盦), 사비옹(思悲翁), 무민(無悶), 매암(梅庵), 비암(悲庵) 등을 사용했으며, 당호(堂號)로는 이금접당(二金蝶堂), 고겸당(苦兼堂) 등을 사용했다. 회계(會稽)(지금의 절강성 소흥) 사람으로, 만청(晩淸)의 함풍(咸豊), 동치(同治), 광서(光緖)년간에 살았던 걸출한 서화가요, 전각가였다.
서예의 학서과정은 처음에는 안진경(顔眞卿)을 법으로 하다가 등석여(鄧石如)와 포세신(包世 臣)의 영향으로 북위(北魏)를 익히고, 이후 은(殷), 주(周) 시대의 금문(金文)을 깊히 연구하여 《육조별자기(六朝別字記)》를 남겼다. 전각은 정경(丁敬)과 등석여(鄧石如)를 법으로 함께 취한 뒤 자기만의 일파를 세웠는데 인보(印譜)의 기록상으로는 약 400여 顆(과)를 남겼고, 그림은 진도복(陳道復)과 이선(李鱓)에게서 사숙하며 공부하여, 화훼방면에 발군의 실력을 드러내어, 양주팔괴의 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배경석 編著/ 220쪽, ㈜이화문화출판사刊, 정가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