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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초 정광주선생 특별초대전
  • 이용진 기자
  • 등록 2016-08-30 12:22:54
  • 수정 2016-09-22 11: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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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8. 31 ~ 9. 6 인사동 한국미술관

금초 정광주 선생이 ‘서예작품 채근담’ 출판기념 특별 초대전을 갖는다.





금초 선생은 ‘채근담’ 전서 225장과 후서 134장 전문 359장을 서예작품으로 완성해 출간했다.


이번 전시에서 특이한 점은 ‘채근담’ 1장부터 순서대로 전서 90점, 이어 예서 100점, 해서 35점, 행서 100점, 또한 초서 34점을 선보인다. 이중 중복되는 내용이 하나도 없을 만큼 뛰어난 작품이다.


또한 10여 점 정도의 소품을 제외하고는 전지 혹은 전지 이상 크기의 대작들이다. 작품마다 독특한 작품성을 위해 다양하게 표현했으며, 때문에 전시회를 준비하는 기간만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채근담’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고전이다. 명나라 홍자성(洪自誠)이 저술한 격언, 경구로 된 인생의 지침서로, 자기수양과 도덕적 삶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그런데 왜 지금 시점에서 ‘채근담’일까. 금초 선생은 왜 이 대형 전시를 계획하면서 ‘채근담’에 모든 것을 쏟은 것일까.그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예의 본질부터 헤아려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서예는 문자를 기반으로 한 시각예술이다. 문자에는 필연적으로 내용이 담기기 마련이고, 어떤 내용을 담는가에 따라 뜻과 가치가 달라진다.



▲ 금초 정광주 선생



“뜻이 담겨 있어야 돈독하고 훌륭해진다 [意乃篤好]”라고 했듯이 내용은 정신과 상통한다. 서예는 모필과 지묵(紙墨)의 운용에 따라 드러내는 미감이 달라지고, 용필에 따라 격조가 달라진다.


숙련도는 물론이고, 예술관에 따라 필획이 다르게 드러난다. 연미, 수려함을 추구할 수도 있고, 웅건, 고박을 지향하기도 한다. 모필로 어떠한 것을 드러내든지 필연적으로 가지고 가야 할 것이 문자의 뜻이다.


따라서 서가가 작품에서 다룬 내용은 작가의 정신성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무엇을 쓰는가에 따라 정신이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채근담’ 속에는 채근담의 정신이 있다. 금초 선생은 그 정신에 감흥을 받아 그것을 작품으로 하기로 했다. 조지훈의 ‘지조론’을 읽으면서 가진 생각이었다.


‘지조론’에는 선비다운 삶, 어려운 세상에 지조를 지키면서 산다는 것, 철학적이고 애국적인 사상, 특히 ‘채근담’의 정신도 여러 번 언급돼 있다.


금초 선생은 ‘채근담’의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았고, 그것으로 작품을 하여 전시회를 할 계획을 세웠다. 2012년, 회갑전의 주제로 삼고 싶었다. 1972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면서 서예를 공부하기 시작하였으니 서학 40년을 맞는 해이기도 했다.


변화와 도약의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바로 회갑전이었다. 그러나 막상 준비에 돌입해보니 양도 많고 성에도 차지 않아서 전시회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게 되었다.


359작품이란 단지 ‘수량이 많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359작품에 그동안 공부해온 것을 쏟아 넣었고, 그러다보니 그 공력이 다 들여다보이고, 작가로서의 아쉬움이나 부족한 점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혹독한 평가도 작가로서 거쳐야 하고, 작가로서 새로운 계획도 실현해야 하기에 반드시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채근담’ 전문을 작품으로 하기로 결정하면서 채근담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문제에 놓이게 된다. 금초 선생은 작품을 할 때 ‘무엇’보다는 ‘어떻게’에 더 주안점을 둔다고 했다. ‘채근담’ 전문을 쓰는 내내 ‘어떻게’에 고심했다.


문학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는 편이어서 평소 ‘무엇’에 대한 숙련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편이다. 대신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를 중시했다.


이번 전시작들을 살펴보면 두 줄 혹은 세 줄에 각 장의 전문을 다 쓴 경우도 있고, 키워드가 되는 몇 글자, 정광주 作, 채근담 전집 105장, 137×60cm 혹은 대조 문구를 취하여 크게 쓰고 협서로 문장을 더한 경우도 있다.


천연염색지, 중국 문양지를 사용하기도 했고, 번지는 맛을 살리기 위해 천을 염색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먹, 주묵, 한국화 물감을 사용하는 등 전부 다르게 작품을 했다. 작품마다 독특한 작품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어떤 작품은 먹 맛을 충분히 살린 작품도 있고, 붓 맛을 살린 작품도 있다. 특히 신경 쓴 것은 서체와 서풍이다. 같은 서체끼리 모여 있으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금초선생은 단조롭고 지루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재료는 물론 구성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가령 예서 중에서도 글자 수가 많으면 작고 가늘어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석문송’을, 글자수가 적으면 ‘장천비’와 같이 서체 서풍으로 각기 다르게 작품을 했다.


전서의 경우는 소전, 대전, 갑골문, 인전(印篆) 등 다양하다. 5체로 구분했지만 서체와 서풍으로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눠진다.


주어진 문장 속에서 서예 작품이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가를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당연히 어려움이 뒤따랐고,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물론 그동안 온전히 ‘채근담’ 작품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었다.





2013년에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채근담 전시를 놓지 않았다. 작가라면 누구나 이런 저런 상황과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작품을 하여서 선보이고 싶다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구성에서부터 필선이나 묵질, 서예에서 깊이 고찰해서 나타내야 하는 정신, 채근담의 정신 등을 욕심 있게 집어넣으려고 했다. 359점을 몇 차례에 걸쳐서 검토하고 재작업하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이렇게 다양하게 전통서예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작품 수도 수이지만 장애 요소를 정면 돌파함으로써 오히려 장쾌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됐다. 전시 디스플레이도 ‘채근담’ 순서대로 할 예정이다.






금초 선생은 그동안 전예 작품을 많이 선보여 왔다. 금문, 갑골 등 전서 작품을 많이 하였고 또 좋아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행서의 묘미를 발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행초서에서 서예의 새로운 재미와 깊은 맛을 느낀 것이다. 운필이 더디고 필압이 있는 전예의 경우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작위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예를 쓸 때는 행초의 맛과 리듬을 가미할 줄 알아야 한다. 반면 행초를 쓸 때는 전예기(篆隸氣)를 담아야 한다.”는 것이 금초 선생의 평소 지론이다. 전예를 쓸 때는 경쾌하게 풀어버리는 맛을 가지고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것이다.





또한 행초서를 쓰면서 기의 흐름과 맛, 통제와 리듬 속에서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됐다. 일찍이 금초 선생은 서예의 실기 이전에 이론을 탄탄하게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매주 토요일 문도들과 함께 서예 이론 공부를 하였다. 서예를 변화하기 위해서는 생각에서 변화가 와야 글씨에 변화가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서법, 필법에만 치우치지 않고 서예를 바라보는 시각, 서예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돌아볼 때 글씨에 변화가 온다는 것이었다. 이론을 탄탄하게 다지는 것은 바로 글씨의 본질을 통찰하는 안목을 키우고 고격에 이르는 길을 모색하는 깊이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


금초 선생은 “동양 미술 속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여백이다. 여백을 어떻게 살려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다가 남는 것이 여백이 아니라 여백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그려야 한다”며 “살아가면서 여백을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여기에 금초 선생의 이번 전시작의 의미를 찾는 실마리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바로 여백이었다“고 말했다.





현대사회는 점점 비쥬얼화되고 있다. 영상과 화상에더 가깝고, 문자는 멀어져 간다. 그러다 보니 개성을 강조하거나 ‘창신’이라는 이름으로 근거 없는 작품들이 확산되기도 한다. 전통에 대한 연찬 없이 개성만을 추구하다보면 표현기법이 서투르고, 예술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창작하게 된다.


물론 안일하게 전통을 답습하면서 전통에 안주하는 것도 경계해야한다. 전통 속에서 정말로 높고 깊은 전통의 맛을 느끼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나의 부족함을 찾아내서 전통 속에서 또 다른 전통을 찾고, 만들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전통예술에 임하는 자세이다.


문자가 기반이 되는 서예는 현대사회의 현상에서 점점 밀려날 소지가 크다. 현대사회의 특성은 속도에 있다.


빨리 얻고, 빨리 소비하는 물질의 과정 속에서 전통이 사라지게 된다. 시간을 요해야 하는 것들이 뒷전에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문자 예술은 의사 표현, 정신 표현이다. 여기에 바탕을 두고 예술이 된 것이 서예이다. 따라서 깊이 있게 다가가고, 정신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서예 자체만으로 승부가 안 된다고 성급하게 시대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 대중에게 편승하고 끌려가거나 작가의 기호와 수준을 거기에 맞추어서는 안 된다.


‘서예의 본질적인 것이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격이 높게 표현할 수 있는가’를 늘 생각해야 한다. 나는 금초 선생의 작품에서 전통서예의 다양한 가치와 의미를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고격한 것으로 승화해가는 것을 확인하였다. 철저한 절제 속에서도 자유로운 흐름을 구현하였다. 엄격하게 전통을 견지하면서도 얽매이지 않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또한 심후하면서도 초연한 기상이 작품 면면에 배어 있었다.


금초 선생은 이번 전시를 포함하여 아홉 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지만, 서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비부담도 있었고, 지방에 거주하면서 서울전을 개최하기가 쉽지 않았다. 서울에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미술관에 들러서 살펴보면서 359점의 많은 작품과 대작을 전시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라고 판단하였다.


어느 작가든지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소장자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변화된 주거 공간, 현대적인 인테리어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금초선생 역시 개인전을 준비할 때마다 이러한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신이 정말로 쓰고 싶은 글씨 스타일로 역량껏 하고 싶었던 작품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번 전시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전시이다.


‘채근담’을 하면서 깊은 성취감을 느껴 누구나 한 번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했다. 금초 선생은 이번 전시를 한마디로 “그 동안은 몰랐는데,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고 의미 부여를 하였다. 그만큼 이번 전시에 기울인 노력과 마음이 컸다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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