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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慧華) 이순자 사경 작가
  • 강영철 기자
  • 등록 2016-04-29 12:47:10
  • 수정 2024-07-23 08: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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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 고려의 맥 계승하는 금니사경의 명인
  • “장엄한 작품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환희와 발심 일으켜주고 싶다”

조선 중기 이후 맥이 끊어진 고려시대 금니사경(金泥寫經)을 300년 만에 재현한 명인이 있다. 바로 혜화(慧華) 이순자 사경 작가다. 특히 이 작가는 고려 사경의 전통방식을 계승해 온 몇 안 되는 작가로, 전통 한지에 무려 7만자를 사경해 내려간 140미터짜리 묘법연화경 사경 작품을 국내 최초로 선보여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에 본지는 이 작가를 만나 사경의 역사와 배경에 대해 짚어보고, 천년의 맥을 계승해 가고 있는 금니사경 명인으로서의 소명을 들어보았다.


▲ 혜화(慧華) 이순자 작가

다음은 이순자 사경 작가와의 일문일답.


-. 원래 사경 작가가 꿈이셨습니까.
그렇진 않다. 처음에는 수필가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필가의 꿈을 접고, 사경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경을 하면서 어떤 공부를 해도 채워지지 않던 가슴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인생도 달라졌다. 지금은 너무나 행복한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 법화경 작가라고 표현하셨는데, 법화경은 무엇입니까.
법화경은 대승불교의 최고 가르침의 경이다. 7권28품으로 많은 공덕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주문과 진언을 포함하고 있다. 7권25품에 관세음보살보문품은 자비를 우선으로 하는 위대한 보살인 관세음보살의 영광과 특별한 능력을 묘사하고 있다. 사경을 할 때마다 한자 한자에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외우면서 쓴다. 관음기도를 하면 모든 소원이 이뤄진다는 확신감을 가지고 법화경 사경을 하고 있다.


-. 사경의 유례는 어떻게 됩니까.
유래를 찾자면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사경의 전성기는 고려시대였다. 고려는 불교와 더불어 건국됐고, 고려왕실과 권신들까지 좋아해서 사경을 제작했다. 국가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경을 제작해 위기를 넘기려 했고, 14세기 전후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때가 전성기였다. 고려사경은 서예와 회화, 공예적 요소를 지닌 종합예술이다. 사경은 불교를 널리 전하기 위해 경전을 사서하지만 예불과 공덕의 대상이라서 오늘날까지 전해져오지 않나 생각된다. 사경은 불교경전 보급차원에서 시작됐지만 점차 수행과 공덕이 강조되면서 예술적 경지로 승화됐다. 1700년 역사를 지닌 문화예술이자 가장 오래된 불교의 수행법이다.


-. 일견 사경과 서예는 일맥상통할 듯 싶습니다만.
사경은 기본적으로 서예의 한 영역이지만 수행의 측면이 강조된다. 또 사경은 해서체를 쓰지만 다양한 재료를 쓸 수 있어 예술의 복합성을 만들 수 있다. 반면, 서예는 개성의 발현을 최우선시 하고 서체도 다양하다.


-. 사경과 일반 회화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다른 미술 같으면 여러 색을 사용하지만, 사경은 오직 한 색으로 농담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어렵다. 일반인은 고작 두세 개 밖에 농담을 표현할 수 없지만 프로는 최소 10단계 이상을 다뤄야 입체감을 완전하게 나타낼 수 있다. 처음에는 글씨를 배우고 다음은 그림으로 건너간다. 그림의 경우 연잎과 연꽃을 배우고 소나무, 학, 호랑이 등이 들어간 길상도를 배우게 된다.

-. 사경 작업을 하실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두십니까.
사경은 수행방법 중 하나로 아주 작은 세필로 쓴다. 따라서 한획 한획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공덕과 불심을 일으키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사경 작업을 하고 있다.


-. 법화경 사경 작품을 고려시대 절터에 모신다고 들었는데.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전시회 개막식 때 참석하신 동화사 주시스님이신 성문 큰스님(지금은 조계종 종회의장)이 비슬산 고려시대 절터에 중창한 대견사 법화경을 모시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나라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여섯군데 있지만 부처님 사리와 법화경을 같이 모신 적멸보궁은 없다고 했다. 제가 사경한 법화경 하질이 작년 9월 대견사에 모시게 됐다. 법화경 작가로 법화경을 사경한 것에 영광스럽고 행복하다.


-. 사경 중에서도 금니사경의 명인으로 유명하신데.

금니사경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
집에서 기도사경을 하고 있다가 처음 금니사경을 봤을 때 느낀 환희심을 잊을 수가 없어서 금니사경을 시작했다. 금니를 사용한 경전을 장엄경이라 하는데 일반작품과 달리 금니사경은 회화와 입체적 작품으로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 이유는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심과 발심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불교를 포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장엄경도 일종의 포교발식이라 생각해서 열심히 사경을 하고 있다.


-. 사경작가로서 가장 뿌듯했던 때는 어제였습니까.
아무래도 7만자에 가까운 140미터의 묘법연화경 사경을 완성했을 때가 아닐까 싶다. 장엄한 묘법연화경을 보고 전시장에 들어서는 불자들은 한결같이 두손 모아 합장하며 한자 한자 정성들인 경전에 감탄을 자아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새삼 경전의 위신력을 느겼다.


-.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고려시대 금니사경 재현이라는 긍지에 걸맞는 작품을 남기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손끝의 힘이 있는 한 계속해서 사경 작업에 매진할 것이다.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덕과 불심을 일으키는 간절한 심정으로 사경 작업에 임하고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장엄한 작품으로 표현해 인종과 종교, 민족을 초월해 모든 사람들에게 환희심과 발심을 일으켜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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